가정예배 순서지

어쩌면 지금의 시간은 

거대한 회중 가운데 익명의 한 사람으로서가 아닌, 진정으로 함께하는 공동체의 예배를 경험할 기회 일 수도 있습니다.

전문적인 예배진행자에게 흐름을 맡기고 그저 청중으로서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회 일 수도 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영상으로 함께 예배하는 것도 좋지만, 조금 어설프더라도 가정에서 혹은 작은 모임에서 함께 예배하기에 참 좋은 기회입니다. 

어떤 방식의 예배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화교회연구소가 배포한 가정예배 순서지를 공유해드립니다. 

3월 15일 가정예배

예배의 부름(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찬송 (393장 “오 신실하신 주”)

1) 오 신실 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2)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 별들도 다 주의 것
만물이 주 영광 드러내도다 
신실한 주 사랑 나타내네

3) 내 죄를 사하여 안위 하시고 
주 친히 오셔서 인도하네
오늘의 힘 되고 내일의 소망 
주만이 만복을 내리시네

<후렴> 
오 신실 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 하신 주 나의 구주

기도 (성림교회 장동수 목사)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말씀하신 주님, 오늘 우리가 코로나 19 전염병으로 인하여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환난에 처한 우리를 건져 이제는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모든 이들이 분쟁을 그치고 주님이 지으신 세상을 회복하는 일에 합력하는 기회가 되게 하소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5) 말씀하신 주님, 이 고난의 때에 우리 교회 공동체가 이웃의 고난에 무감각할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자기중심적인 신앙을 고집함으로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도우소서. 

방역을 위하여 헌신하는 자들의 건강을 지키시고, 멈추어버린 사업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주의 백성들의 삶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는 흩어져도 주님의 교회인 줄 믿습니다. 모이기를 사모하는 마음 잠시 내려놓고 오늘 흩어져 예배를 드리는 처소마다 주님의 위로와 평화를 내려 주소서.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에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 풍랑의 바다를 안전하게 지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말씀 (마태복음 16:24~17:8)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아니하더라

말씀 <교회의 자리> (민들레교회 김영준 목사)

사람이면 누구나 좋은 말, 잘 될 거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선 제자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을 말을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습니다.(마16:21)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십니다.(마16:24) 제자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았을 말들 이었습니다.

그러고 난 후 엿새가 지났습니다(마17:1). 엿새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시간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며 엿새 째 되었을 때 사람을 지으셨습니다(창1:26,31). 예수께서 고난과 죽음과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시고 나서, “엿새 후에” 예수를 따라나섰던 제자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예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하얗게 변화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마17:2). 베드로는 하얗게 빛나는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모습을 쳐다보고는 그 현장을 보존하기로 마음먹습니다(마17:3~4). 놀라운 일이 일어난 신성한 공간을 영구 보존하는 것은 향후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그럴듯한 진지가 될 것이라 여겼습니다. 갸륵한 마음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닙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현장을 보존하고, 사람들이 모일만한 특별한 현장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예수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마17:5). ‘엿새 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곧 죽음이라, 제자들은 두렵지만(마17:6) 예수께서 다독이십니다. “두려워말라”(마17: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고난과 죽음과 십자가의 길에 관해 말씀하시고 나서 “엿새 후에” 예수의 얼굴과 옷이 하얗게 빛났다는 것엔 예수께서 비로소 진짜 ‘사람’이 되셨다는 함의가 녹아있습니다. 고난과 죽음과 십자가의 길 너머에서 사람은 비로소 하얗게 빛나는 진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까닭에 고난도 죽음도 십자가의 길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난과 십자가의 길과 죽음은 진짜 ‘사람’으로 창조되는 과정입니다. 모든 사람은 진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으로 창조되는 중입니다. 이것이 거듭난다는 의미입니다(요3:7). 거듭 태어나야, 날마다 다시 태어나 예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야, 비로소 진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신성은 인간이 되심으로 드러났고, 우리의 인성은 신이 됨으로 증명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진짜 ‘사람’이 됨으로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셨고, 우리 인성은 신(神)인 양 십자가의 길을 가며 증명됩니다. 우리의 진보는 젖을 먹고 털 난 포유류의 진화로 그치는 게 아니라, 마침내 신성에 도달한 진짜 ‘사람’으로 완성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거듭 다시 태어나며, 날마다 진보하며 옷도 얼굴도 하얗게 빛나는 진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가 세상에 왔습니다. 격리와 분리의 시절입니다. 전염병이 돌고 있는 지금 교회의 최대실천은 ‘멈춤과 쉼’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를 위한 집짓기를 고집하지 않고 멈춰 쉬고 있는 지금, 코로나19바이러스가 오기 전에도 격리되고 분리된 일상을 살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멈춤과 쉼의 시간이 끝나면, 마땅히 가야 할 진짜 ‘사람’의 길로 나서길 기도합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를 위해 지은 집이 아니라, 격리되고 분리된 사람들의 곁이 교회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듣고 싶어 하지 않을 말, 하나님께선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찬송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1)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2) 세상 부귀 안일함과 모든 명예 버리고 
험한 길을 가는 동안 나와 동행하소서

3) 어둔 골짝 지나가며 험한 바다 건너서 
천국문에 이르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후렴>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아멘

다짐 및 안내

1.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2. 주님의 마음으로 이 상황을 헤쳐갑시다.

주님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