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교회

어떤 소식

코로나로 인한 단상 하나

  어느 날 문득 세월호 소식이 들려온 것처럼 
그렇게 문득 코로나 바이러스 소식이 들려왔다. 

 늘 그랬다. 반갑지 않은 소식들은 늘 문득 문득 다가와서 의향도 물어보지 않고 한 동안 머물러 나와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저만치 물러났다. 

5․18 광주가 그러했고, 형이 암이라는 소식도 그러했다. 
이천년 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예수라는 사람의 소식은 어떠했을까? 

 바이러스, 전염병, 마스크, 그리고 사회적 거리... 나는 잘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저 두렵다고 생각하기엔 뭔가 안 그래야 할 것 같고, 그렇다고 잘났다고 우쭐댈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힘 없고 가난한 약자들에게 더욱 심하게 그리고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매우 슬프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멀리하게 되는 마음도 슬프고, 그 동안 너무 집단으로 뭉쳐 우쭐대고 크게 소리쳤 사람들의 모습, 온 세상 갈 곳 안 갈 곳 없이 남극이든 아프리카 오지든 다 가보려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경고 같기도 하고... 

 생각해 보면 늘 있어 온 일이다. 무당이 굿을 해서 치료하거나 쫒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오랜 옛날부터, 현미경으로 바이러스의 실체를 그려냘 수 있는 지금까지 늘 전염병 그리고 전염병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은 늘 있어왔다. 그리고 그에 따른 마녀사냥 까지...

 무슨 의미일까? 어떤 소경이 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것이 본인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조상의 죄 때문인지 묻는 사람에게 성서는 신의 뜻 때문이라고 하는데, 과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은 무슨 의미일까?

 잘 모르겠다, 잘 모르지만, 반평생 살아오면서 나도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했고, 세상을 쓸어버리고 싶어지기도 했고, 인간이 가장 혐오스럽게 바라보기도 했고, 배신감에 치를 떨기도 했다.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것이 비단 신의 마음만은 아니었다. 사랑받지 못하면 세상 아무것도 의미 없어지는 것이 비단 인간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세상엔 늘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고, 그것은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한동안 소식이 없던 동안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기도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결코 잘했다고는 못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려움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세상은 무섭고 어두웠을까. 

 지도자라는 것들이 거의 다 하나같이 엉망인 세상 천지에 과연 빛이라는 것이 제대로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그리고 이미 동굴의 어둠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진 사람들은 빛이 와도 제대로 느낄 수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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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거리라는 말이 화두다.
거리라는 말의 부정성이 사회적이라는 수식어 앞에서 우아하게 회복되었다. 그러나 거리라는 말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더 많은 요소가 갖추어져야 싶다. 그래서 그 말 앞에서 함부로 아니라고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동의도 할 수 없다. 세상은 이미 무지 급하고 매우 단순하고 일단 피하고 볼 일이 중요하니까

 무작정 동의 없이 마구 다가갔던 그 동안의 마음의 거리를 지키지 못했던 폭력도 엄청 문제지만, 온통 가리고 싸매고 마스크와 담 안에 유폐된 모습도 마찬가지로 그 동안의 모습과 양면적인, 일방적인 판단이고 단정인 또 하나의 모습일 뿐이다. 지극히 인간적이나, 지극히 소극적인 또 하나의 방편이요, 한계인 모습 같다. 

 물리적 거리는 나름 중요하고 필요한 단계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그리하고,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제대로 알고 할 일이다.

 문둥병 환자를 어루만지고, 창녀와 함께 밥을 먹고, 제자의 발을 닦아주던 모습은 내 안에 신이 살아 움직일 때나 가능한 사랑인가

 아는 게 별로 없으니, 반박을 하면 답변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목소리 크다고 그게 전부는 아니고, 이름을 멋지게 붙였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그저 의미만 있을 뿐.

 조심 이전에 배려가 필요하고, 경계 이전에 동정이 우선이고, 슬픔을 넘어서는 인간의 감정은 별로 없다는 말이 너무 길어졌다. 

 어벤져스 시리즈 어떤 영화의 끝 장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오래 산다는 것이 과연 중요할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오석균(가까운교회/ 시인, 속초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