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목사의 이스라엘 기행 1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는 엘라 골짜기(Valley of Elah)라는 곳이 있습니다. 
엘라 골짜기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여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 곳입니다.
엘라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사울 왕의 군대와 블레셋 군대가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이 골짜기의 남쪽 언덕에는 “소고(Socoh)”가, 북서쪽 언덕에는 “아세가(Azekah)”가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이 두 언덕을 끼고, 그 사이에 있는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습니다. 
사울왕의 군대는 엘라 골짜기의 바로 북쪽 언덕에 진을 쳤습니다. 
엘라 골짜기는 이 세 언덕 사이에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이 있던 북쪽 언덕 위에서는 최근 다윗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Khirbet Qeiyafa라는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엘라 골짜기 평원 위에서 다윗과 골리앗이 마주쳤습니다. (아래 지도)

사무엘상 17:1-3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브엘세바 방면에서 예루살렘 쪽으로 향하는 38번 도로에서 벗어나 동쪽으로 향하는 375번 국도로 꺾어 지면, 바로 그 지점이 엘라 골짜기의 중심입니다.
375번 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바로 베들레헴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베들레헴까지는 직선거리 25km, 도로 길로도 30km가 채 안됩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 있는 아버지 이새의 집에서 이 계곡을 향해 걸어왔을 겁니다. 
걸어서 네댓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입니다.

서쪽 지중해변에 근거지를 둔 블레셋 사람들이 동쪽 베들레헴과 유대산지로 가려면 이 엘라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엘라 골짜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쪽 지역들을 방어하는 최후의 길목이었습니다. 
여길 방어하지 못하면, 동쪽에 있는 헤브론, 베들레헴, 기브아 까지 모두 쉽게 함락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다윗의 손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375번 국도를 몇 번이나 왔다갔다 했지만, 도로 주변에는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38번 도로와의 갈림길 바로 옆에 주유소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모퉁이에 작은 공터가 있어 주차 했습니다.
아직도 위치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에베스담밈”이, 아마도 여기쯤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차에서 내려, 소년 다윗의 마음으로 골짜기를 향해 나섰습니다.

(사진 설명 : 골짜기 북쪽으로 이스라엘 진영이 있던 언덕이 있습니다. 언덕 아래에 절벽이 보입니다.)

엘라 골짜기는 풀들이 무성하게 피어나 있는 평야였습니다.
한 가운데로 들어가보니 온통 진흙밭입니다. 
이스라엘 진영이 있던 북쪽 언덕을 향해 몇 발자국 걷는 사이에 신발과 바지에는 진흙이 가득 묻었습니다. 
이 언덕은, 멀리서 볼 때는 완만한 언덕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가보니 상당히 높은 지대였습니다.
양쪽 진영이 있던 곳 모두가 “언덕”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곳들입니다.
“이쪽 산”, “저쪽 산”이라고 한 성경 말씀이 정확한 표현인 듯합니다. 
웬만하면 꼭대기까지 가 볼 생각이었는데, 가까이 갈수록 그럴 엄두가 안납니다. 

그 대신, 골짜기에 넓게 펼쳐진 평지 한가운데 섰습니다.
여기쯤에서 다윗과 골리앗이 대결했을겁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비웃는, 골리앗의 쩌렁거리는 목소리가 이 골짜기에 가득 퍼지는 듯 합니다. 

양 편의 대표자가 한 사람씩 나와 일대일로 싸우고 그 결과로 양 편의 승패를 결정짓는 방식은 그리스 문명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블레셋 인들은 원래가 그리스와 에게해 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발음은 비슷하지만,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랍 지역에서 이주하여 정착한 사람들이고, 당시의 블레셋 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인종입니다.)

골리앗은 합리성과 이성을 기반으로 한 그리스 문명의 대표자였고,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히브리 문명의 대표자였습니다. 
갑옷으로 무장하고 무서운 무기를 휴대한 거인이, 갑옷도 입지않고 그렇다할 무기도 들지 않은 소년에게 패한다는 것은, 어떤 합리성과 이성으로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어떠한 것도 그 분이 해결하실 것을 믿는 히브리 문명의 믿음 앞에서는, 그런 일 쯤은 늘 생길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물매 막대기 하나만 달랑 들었던 히브리 문명의 대표자가 승리했습니다.
갑옷을 입지 않은 소년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그의 칼을 뽑아서 머리를 잘라냈습니다. 
그 소년이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엘라 골짜기 한 가운데 서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상상하며 생각해보았습니다.
- 갑옷을 입고 중무장한 거인 골리앗 같은 존재가 내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가...
- 나는 그 골리앗에게 늘 주눅들고, 그를 무서워하면서, 그를 회피하려고 해오지 않았던가...
- 다윗처럼 걸어나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가운데 골리앗을 맞닥뜨리고 그와 대적하여 싸워본 적이 있던가...
- 그가 나의 하나님을 조롱하고 성도들과 교회를 조롱할 때, 나는 사울 왕과 그의 군대처럼 숨죽이고 있지 않았던가...
저는 제 자신의 부족함을 더 실감하며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무거워진 마음으로 엘라 골짜기 평원을 빠져나왔습니다.
큰 도로를 벗어나 소고 언덕 쪽의 작은 길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주변에 붉은 야생화들이 가득 피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롬 아돔 (Darom Adom).
히브리어로 “붉은 남쪽”이라는 뜻인데, 2월경이 되면 이스라엘 남쪽 지역에 피어나는 이 붉은 야생 아네모네를 즐기는 축제가 벌어집니다. 
아네모네의 꽃잎 색깔은 눈이 부시도록 붉습니다.
다윗이 잘라낸 골리앗의 머리에서 쏟아져 나온 피처럼 붉습니다. 

소고 언덕 기슭으로 더 올라가 엘라 골짜기를 다시 바라봅니다. 
그들이 믿고 있던 거인 장수가 쓰러지고 목이 잘렸을 때, 결코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그런 일이 벌어 졌을 때, 블레셋 인들은 얼마나 경악했을까요. 
그들의 세계관에 얼마나 큰 혼란이 있었을까요.
한없이 교만한 사람들이 그들의 세계관에 혼란을 느낄 만한 그런 모습을, 저도 제 삶에서 보여주어야 할 텐데요...
크리스챤으로서 마냥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네모네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언덕에 앉아 있자니, 갑자기 가슴 속으로부터 뭔가 할퀴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집니다. 
토해 버리고 싶은 흐느낌입니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생깁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게 좋습니다.
저기요... 
제 멘탈, 이거 정상적인 거 맞나요... ^^

보리떡교회 최형구 목사님께서
이스라엘 여행기를 연재해주십니다.